3

외국인 눈에 비친 익선동

“상업 자본 유입 막지 못하지만 거주 공간 확보해야”

배동주 기자 ju@sisajournal-e.com 정한결 기자 hj@sisajournal-e.com

익선동 166번지, 사람 냄새가 변하고 있다. 90살 한옥 대문 앞에 앉아, 한옥만큼이나 나이 든 친구들과 나누던 할머니들의 담소가 젊은 창업가의 포부와 섞이고 있다. 익선동 166번지 일대는 2014년 한옥을 개조한 카페나 음식점이 속속 들어서면서 서울에 가장 빠르게 변하는 동네가 됐다.

90살 한옥이 자리한 이곳에 젊은 사람들이 하나둘 상점을 열기 시작하면서 올해 들어 변화는 더 빨라졌다. 지난 8월 31일 기준 최근 2년간 한옥을 주거 용도에서 상업 용도로 변경해 새롭게 단장한 상점은 50곳에 달한다.

일각에선 이를 상업화라 규정하고, 상업화가 과거를 씻어내고 있다고 평가한다. 한옥이 분명한데도 한옥은 어디론가 가버렸고 돈만 남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변화를 이야기할 때 변화의 비정함을 평가할 수 있는 잣대가 있기나 할까. 익선동은 어떤 곳일까.

시선의 범위를 확장해 익선동을 바라본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지금이 좋다고 이야기한다. 거주와 상점이 적절하게 섞여 현 상태를 가능한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외국인 인터뷰 영상 / 촬영=배동주,정한결 편집=정은비

“상업자본이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거주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거주가 없는 공간은 진짜가 아니다.”

낮은 한옥의 거리를 향해 연신 한쪽 눈을 카메라 렌즈로 활용하는 스페인 출신 건축가 곤잘레스 하비(26)는 “200~300년 전 전통적인 생활방식은 아니더라도 적당한 선에서 관습이 지켜졌으면 좋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80년 전 지어진 한국의 근대식 가옥 구조에 관심이 많다고 말하면서도 골목에 앉은 할머니들을 피사체로 삼았다. 시간이 쌓여 뿌옇게 먼지 낀 서까래, 삐걱거리는 나무 대문은 배경이 될 뿐이었다.

하비는 “익선동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있어 박물관 같지 않다”며 “마을을 거닐면 이 공간이 매우 작고 섬세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람들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열쇠가 되어 만들어낸 어우러짐이 좋다”고 덧붙였다.


한국은
적극적으로
이것을
지켜야한다
”한국은 적극적으로
이것을 지켜야한다”

익선동 한옥 밀집지역 내 한옥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 앞에서 만난 독일 출신 여행가 아칭(63)은 “이곳엔 새로운 건물을 가능한 한 높게 짓는 한국 대부분 건물과는 다른 새로움이 있다”며 “한국은 적극적으로 이것을 지켜야 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독일은 전쟁을 겪고 모든 것이 사라진 후 건물을 보존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았다”며 “자기 집이라고 해도 건물 외부는 무조건 지켜줘야 한다. 법적으로 금지되어있다”고 설명했다.

익선동은 그러나 이미 많은 것을 잃었다. 상점 내부에 앉은 손님들이 3m 남짓한 골목 풍경을 볼 수 있도록, 밖에 있는 사람은 내부를 엿볼 수 있도록 한옥 벽은 통유리로 변했다. 눈길을 끌어야 한다는 강박은 한옥 벽에 빨간 문틀을 설치케 해 시간이 멈춘 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21세기를 박제했다. 허리가 잘린 사랑방이 담장으로 변하는가 하면 깨진 벽이 그대로 남은 곳도 있다.

외국인 인터뷰 영상 / 촬영=배동주,정한결 편집=정은비

루마니아 출신 여행가인 라두 알렉산드레스쿠(60)는 전통과 상업이 융합하는 것은 전 세계적 현상이지만 상업의 범람으로 전통과 건축이 공존하지 못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알렉산드레스쿠는 “미국 월가는 건물을 멋있고 예쁘게 짓는 것에 집중했지만 차가운 느낌만 남아 관광객들에게 매력적이지 않다”며 “전통과 건축이 살아있어야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익선동 근처에서 거주하는 탓에 빠르게 달라지는 매일매일을 지켜본 영국 출신 영어강사 크리스 브레이디(31)도 더 이상의 변화는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그동안 익선동에서 진정한 한국의 모습을 봐왔다고 고백하는 그는 “익선동이 점차 살아있는 공동체의 느낌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브레이디는 “처음 익선동에 왔을 때 이곳은 마치 이탈리아 나폴리 같았다”며 “진정한 한국을 보여주기 위해 한국으로 여행 온 호주 친구를 데리고 처음으로 온 곳이 이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패션 상품만 파는 상점들이 줄지어 선 로데오 거리는 정말 보기 싫다”며 “한국의 전통적인 모습을 지킬 수 없게 된다면 정말 수치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익선동은 지난 1일을 기준으로 7곳에서 공사가 이뤄지고 있다. 한옥 밀도가 높아 대부분 관광객이 머무는 166-11번지부터 166-76번지 일대 58채 한옥의 37%는 이미 상점으로 변했다.

외국인 인터뷰 영상 / 촬영=배동주,정한결 편집=정은비


익선동은
점차
살아있는
공동체의
느낌을
잃어가고
있다
”익선동은 점차
살아있는 공동체의 느낌을
잃어가고 있다”

자본이 삶을 지우는 것을 보면서 벽안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 정도에서 멈출 것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대문 밖에선 끊임없이 공사 소리가 들려온다. 앞으로 살면 얼마나 살겠느냐며, 임대료도 싫고 그냥 있겠다고 밝힌 머리가 흰 한옥 주인 할머니들도 이제는 떠남을 준비한다.

하지만 자본 유입의 지연이나 거주민 삶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인 정책도 없다. 서울시는 2014년 10월 “역사도심기본계획관리계획상 특정관리지구 지정이 필요한 지역”이라며 “대책 없이 정비구역을 해제할 경우 무분별한 철거나 개발 허가 요청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지구단위계획이 마련될 때까진 재개발 구역 해제를 보류한다”고 발표한 뒤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브레이디는 “카페나 바가 3~4개 정도 더 늘어나는 것까진 괜찮을 수 있지만, 더 이상은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통과 모던함 사이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만약 이 동네가 완전히 상업적인 건물들로만 들어선다면, 익선동은 전통적이고 공동체적인 느낌을 상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인터뷰 영상 / 촬영=배동주, 정한결 편집=정은비

프랑스 출신 건축가인 찰브라 카미유(23)는 정주 공간으로서의 익선동을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카미유는 “큰 타워와 함께 있는 작은 집들 그 속에 섞인 작은 상점들이 이 동네를 매력적으로 만들지만 그 배경은 사람이 사는 동네라는 점”이라며 “주거지로 남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에서 일한 현대미술관 옆에도 전통마을이 있다. 그곳은 매우 아름답고, 전통을 보존해 놓았다는 느낌이 나지만 인위적”이라며 “익선동은 진짜”라고 말했다.